마세라티의 본사가 위치한 모데나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결국 폭풍으로 변했다. 모기업 스텔란티스(Stellantis)가 마세라티에 대한 15억 유로(약 1조 6,500억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전격 취소하면서 브랜드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졌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여러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판매량이 급감하며,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마세라티의 미래는 이제 불확실성의 중심에 서 있으며, 업계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판매량 반토막, 재정 위기 심화
마세라티의 판매량 감소는 단순한 하락이 아니라 사실상 자유낙하 수준이다. 2024년 판매량은 1만 1,300대로 전년 대비 절반 수준(2023년 2만 6,600대)까지 추락했다. 여기에 260만 유로(약 2,710억 원)의 적자까지 발생하며 재정 상황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특히, 전동화를 향한 기대가 컸던 MC20 폴고레(Folgore), 콰트로포르테 EV, 전동화된 르반떼(Levante) 등 신모델의 개발이 불투명해졌다. 이는 마세라티가 설정했던 전기차 중심의 미래 전략이 사실상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스텔란티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더그 오스터만(Doug Ostermann)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마세라티의 사업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특히 중국 시장에서 럭셔리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기대보다 느리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추가 투자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스텔란티스의 입장이 명확해진 셈이다.
마세라티의 브랜드 정체성 위기, 노조 반발 거세져
판매 부진과 재정 위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마세라티의 브랜드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였던 마세라티는 현재 명확한 타겟층조차 설정하지 못한 채 시장에서 표류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마세라티코리아는 출범 이후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쳤지만, 지난해 한국 시장서 252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이탈리아 노동조합 FIM은 오는 3월 11일 스텔란티스를 상대로 공식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페르디난도 울리아노(Ferdinando Uliano) FIM 사무총장은 "마세라티는 현재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라며 마케팅 전략 부재와 브랜드 포지셔닝 실패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마세라티의 생존을 더 이상 운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운에 맡기는 것 외에 마세라티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2023년 12월 스텔란티스 CEO였던 카를로스 타바레스(Carlos Tavares)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구조조정 압박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스텔란티스는 14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 브랜드는 성공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마세라티처럼 부진한 브랜드는 존폐 여부가 불투명하다.
마세라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제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마세라티가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자동차 업계에서는 기적이 일어난 사례가 몇 차례 있었지만, 기적을 위해서는 명확한 비전, 투자, 그리고 소비자가 원할 만한 제품이 필요하다.
과거 람보르기니도 위기를 겪었고, 알파로메오 역시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 생존에 성공했다. 마세라티가 그들과 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현재 마세라티는 확실한 비전도, 투자도, 시장이 원하는 제품도 부족한 상황이다. 스텔란티스가 마세라티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필요성이 없는 이상,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였던 마세라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세상은 또 하나의 실패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를 필요로 하는가?" 냉정하게 말해, 그 대답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마세라티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브랜드의 역사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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